정적인 보건실, 베텔게우스가 침묵을 깨고 조용히 굥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아니지 아니지 예전부터 아르키 선배님이 안 보이던데? 어디 가셨어요?" 베텔게우스의 한마디에 보건실 전체가 정적 상황이 되었다. 마치 말 못할 상황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굥이 조심스레 입을 열어 답했다. "그게... 말이지. 며칠 전부터 자기 방문을 꽉 잠그고 방에서 안 나오더라고. 수업도 안 듣고, 그렇게 좋아하던 배드민턴도 안 치고 배틀도 안 하고 말이야." "한마디로 행방불명이라는 거지." 하얀토끼의 한마디가 핵심을 찔렀다. 베텔게우스의 얼굴이 다시 한번 일그러졌다. 그는 스승 디지 박사를 잃은 것도 모자라, 아르키까지 잃은 것이다. 지금,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베텔게우스의 기분이 안 좋았다. 디지 박사가 베텔게우스 삶의 등불이라면, 아르키는 평생의 힘이었다. 힘들 때 격려 해주던 아르키 선배가 없으니 말이다. 베텔게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럼 아르키 선배 방 가보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하얀토끼가 언성을 높였다.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니까? 문 잠그고 휴지로 둘러싸고 개구마르 거품으로 문 고정하고... 하, 난장판도 아니야." 베텔게우스는 해석이 어려웠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했다. 온 학교가 이 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점. 아르키는 방도 깽판을 쳐놨다는 점. "그럼 저희가 가보면 되지 않나요?" 굥이 따지면서 물었다. "그러면 문 수리비, 쓰레기 처리비, 기물파손 보상금, 기타등등... 뭐 다 학교에 바쳐야 하는데... 괜찮겠어?" "네!" 베텔게우스에 입에서 이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남성 기숙사는 불이 꺼져 있었다. 분명히 낮인데도 캄캄한 밤보다 어두침침한 것이 현재 관동 지방의 상황을 잘 나타내주고 있었다. 아, 물론 아르키의 방에 아르키가 해놓은 우주방어 시설을 뚫긴 어려웠다. "마휘핑, 제발!" "이번에야 말로!" 엘리트 포켓몬들도 그 우주방어 시설을 뚫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때, 엄청난 생각이 베텔게우스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랏, 파이리!" 베텔게우스 말고 다른 사람들은 저 작고 귀여운 파이리로 뭘 하려는 건지 알지 못했다. "꼭 문을 부수라는 법은 없지. 연결부위를 부수면 돼! 연결부위까지 방어로 칠해버리면 자기도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 있으니까 저 부분은 약하게 방어할 수밖에 없고 연결부위는 철이지!" 베텔게우스의 설명에 모두가 넋을 놓고 감탄했다. "자! 그럼 파이리, 불꽃세례다!" 베텔게우스의 예상은 적중했고, 결국 연결부위가 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스르륵 넘어졌다. 문이 넘어지면서 먼지가 피어올랐는데, 마치 관리가 안 된 흉가처럼 먼지가 가득했다. 그리고 아르키의 방은 생각보다 훨신 끔찍했다. 그곳엔 아르키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대신 흔적만 있었다. 그곳엔 유통기한 한 달 지난 꽉 찬 우울증 약통, 정체불명의 메타몽 색 약품과 그것을 정화시키는 장치가 있었고, 장치에선 하얀색의 약품이 나왔다. 책상의 먼지 때문에 책상의 갈색이라곤 온데간데 없었고, 하얀색 약품의 담긴 통과 같은 제품인 빈 통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여러 소설책들이 너저분하게 놓여 있었다. <잃어버린 세계>... <삼국지>... <80일간의 세계일주>... 그 중 가장 닳고 오래되어 보인 건 <지킬 박사와 하이드> 라는 소설이였다. 그때였다. 방 밖으로 아르키를 업은 베스트가 휙 지나갔다. 베스트가 너무 많은 욕설들과 혼잣말을 해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이 문장만큼은 확실히 들렸다. '이 사람은 왜? 왜? 이 춥고 지독한 일교차인 가을에 공원에 자빠져 있던거야?' 보건실에선 베스트의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심한 약물 중독이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르키가 대꾸했다. "아, 제가 1달 전에 우울증을 지독하게 앓아가지고요..." "아이고... 우울증 참 힘들지... 일단 조금 쉬고 있어라." 베스트의 걱정이 담긴 말을 뒤로하고 베텔게우스와 그 일행에겐 수많은 생각이 뇌 위로 떠올랐다. '거짓말! 1달치 우울증약을 그냥 버려버린건 뭔데 그럼? 1달 전이라고 했으니까 이건 빼도박도 못한 거짓부렁이구만!' '잠깐만... 그럼 그 하얀 약물은 뭔데? 그 약물의 정체는 뭔데? 그건 또 왜 마신 건데? 그럼 아르키 이 사람 정체는 대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