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쎄한 전학생] 전학생 주현서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반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검은 후드에 무심한 표정. 시선은 낮게 깔려 있었지만, 걸음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전학생이래.” 누군가 속삭였고, 그 말은 금세 교실 전체로 번졌다. 주현서는 자기 자리도 찾지 않은 채, 교실 한가운데를 훑어보다가 한 아이를 가리켰다. “야. 빵 좀 사 와.” 아이의 얼굴이 굳었다. “돈 주면… 사 올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짧은 둔탁한 소리가 났다. 주현서의 손이 아이의 머리를 내리쳤다. “말대꾸하지 말랬지.” 교실이 얼어붙었다. 그때, 주현서의 시선이 멈췄다. 창가 쪽에 앉아 있던 김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둘 사이에 말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김유진은 잠시 주현서를 바라보다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야, 전학생.” 김유진이 느긋하게 말했다. “내가 우리 반 일짱이야. 어디서 설치고 있어?” 아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와… 일진들끼리 붙나 봐.” “우리 X됐다.” 짧은 신경전 끝에,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분위기를 망치고 있었다. 1교시 쉬는 시간. 주현서는 갑자기 김유진, 이지유, 박유나를 불렀다. “도서관 가자.” 거절할 틈도 없었다. 도서관에서는 별다른 일 없이 시간을 보냈고, 종이 울리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날은 체육대회였다. 반 애들은 이미 운동장으로 내려간 뒤였다. 지유, 유나, 김유진, 주현서는 뒤늦게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급하게 내려가던 중, 김유진이 지유를 흘겨보며 말했다. “뭐 이렇게 느려?” 지유가 대답하지 않자, 주현서가 옆에서 유나를 내려다봤다. “애들이 기다린다는 생각 안 해?” 공기가 순간 팽팽해졌다. 계단 중간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뭐?" 유나가 날카롭게 반응했고, 김유진은 지유의 팔을 밀쳤다. “비켜.” 동시에 주현서도 유나를 밀었다. 균형을 잃은 두 사람은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짧은 비명, 이어지는 소란. 계단 아래에 쓰러진 지유와 유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마와 팔에 붉은 자국이 번져 있었다. 곧 라임쌤과 보건 선생님이 달려왔다. “119 불러요!” 구급차가 도착했고, 지유와 유나는 들것에 실렸다. 유나는 부모님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고, 지유는 아빠의 손에 이끌려 구급차에 올랐다. 계단 위에 남은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체육대회는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망가져 있었다. [2화: -충격적인 고백] 햇살이 부엌 창을 부드럽게 두드리던 늦은 오후. 지유는 아빠가 만든 크림 파스타를 천천히 포크로 감았다. 그 사건 이후로 조금씩 회복 중이던 그녀는 입 안에 퍼지는 따뜻한 맛에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좀 먹을 만해?" 아빠의 목소리에 지유는 희미하게 웃었다. "응, 맛있어." 그렇게 평범하고 조용한 저녁. 그러나 평범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으… 어지러…” 순식간에 그녀의 시야가 낮아졌다. 손이 작아지고, 몸이 가벼워졌고, 눈앞의 세상이 낯설게 왜곡되었다. 익숙한 감각. 익숙한 공포. “아, 또야…?” 녀석이 왔다. 그 '변화'가. 털이 나고, 귀가 길어지고, 꼬리가 생겼다. 지유는 테이블 위에서 한숨을 쉬었다. 그 때였다.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아빠는 놀란 듯 문 쪽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그곳에 서 있던 건 낯익은 얼굴. 박도현. 수수한 셔츠, 익숙한 눈빛. 그는 당황한 듯 지유 아빠를 바라보았다. "어… 어, 도현이구나!" 지유 아빠는 지나치게 과장된 미소를 지었다. "이 녀석? 새로 입양한 고양이야! 귀엽지? 허허… 나는 좀 급한 일이 있어서!"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신발을 신고 뛰쳐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허무하게 울렸다. 남겨진 건 고양이, 그리고 도현. '시곗바늘 소리가 원래 이렇게 컸었나?' 지유는 당황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도현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고양이에게 다가왔다. "...지유야?" 지유는 눈을 질끈 감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나… 이지유야." 고양이의 입에서 나올 리 없는 목소리. 그러나 분명 그녀였다. 도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금세 표정이 돌아왔다. 지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 "...알고 있었어." 지유는 그 말에 더 놀랐다. "뭐라고?" 도현은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말했다. "너 변하는 거, 처음 본 거 아니거든." [3화: 굴욕적인 날] 며칠 후. 햇살이 뜨거워진 어느 초여름의 오후. 학교 운동장엔 다시 축제의 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체육대회 재개. 한 차례 미뤄졌던 일정은 다시 돌아왔고, 학생들은 각자 반색을 들고,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떠들썩했다. 지유는 긴장된 눈빛으로 체육복 윗단을 매만졌다. 몸은 다 나았지만… 마음은 아직 덜 회복된 상태였다. 파스타를 먹던 그 날 이후, 도현과의 대화는 많지 않았다. 아니, 도현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 조용하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러나 무언가 알고 있는 사람처럼 지유를 대했다. “라임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경기 전, 조심스레 손을 든 지유. 그러나 라임쌤은 심판 선생님과 이야기 중이었고, 그 작은 목소리는 체육관의 소음 속에 묻혀버렸다. 지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나가면 민폐일까? 곧 끝나겠지… 금방이잖아, 피구 하나면… 그렇게 경기는 시작됐다. 공은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지유는 눈에 띄지 않게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공이 무자비하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지유는 가까스로 몇 발을 피했지만 몸도 마음도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지유야, 조심해!” 어디선가 들린 도현의 목소리. 1초 전. 그 순간, 상대팀이 던진 강력한 슛이 지유의 복부를 정확히 강타했다. 쿵. 숨이 막혔다. 세상이 빙글 돌았다. 그리고, 멈췄다. 지유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흰 체육복 바지가 스르르… 젖어들었다. “……!” 아이들이 처음엔 놀랐고, 곧 웅성거림이 시작됐다. “야, 뭐야?” “지유 괜찮아?” “어디 다쳤어?” 그때였다. 체육관 문이 쾅! 열렸다. 박동수가 사이다 캔을 흔들며 들어왔다. 그는 순간 상황을 보고 눈이 커지더니, 손가락으로 지유를 가리키며 비명을 질렀다. “야, 이지유 지렸다! ㅋㅋㅋㅋㅋ” “와 진짜 실화냐ㅋㅋㅋㅋ” “폰 어딨냐ㅋㅋㅋ"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끄러웠던 체육관은 다른 의미의 소란에 휩싸였다. 지유는 그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얼어붙었고, 심장은 느리게,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 순간. 라임쌤이 달려왔다. "박동수!" 쌤의 목소리가 칼처럼 날아왔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사과해. 당장." 박동수는 당황했지만 여전히 키득거렸다. “근데 진짜 지렸잖아요ㅋㅋ…” “나가.” 라임쌤의 눈빛은 날카로웠다. 박동수는 더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체육관을 나갔다. 조용해진 체육관, 수많은 시선 속, 지유는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그 순간 모든 게 멈춘 것처럼. [4화: 따뜻한 그 손길] 체육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웅성거리던 아이들도, 휘슬을 불던 선생님도, 모두 멈췄다. 바닥에 주저앉은 지유. 머리카락 너머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뒤, 누군가 가까이 다가왔다. 낯익은 목소리. 조심스럽고 낮게 깔린 말투. “지유야… 괜찮아?” 그 한마디에 꾹 참고 있던 감정이 순간 흔들렸다. 지유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말하려고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손이 하나, 조용히 자기 손 위에 포개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 박도현. “…움직이기 힘들지?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지유는 고개를 아주 조금 들었다. 눈앞에 있는 도현의 얼굴은 놀라움도, 당황함도 없이 그저 진심으로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이런 일…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어.” “네가 창피할 일 아니야.” 그 순간, “여기요!” 라임쌤이 달려왔다. 손엔 담요와 티슈가 들려 있었다. “지유야, 괜찮아. 지금 다쳤으니까 그런 거야. 이건 누구 잘못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야.” 쌤은 지유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었다. 그 따뜻한 손길에 지유는 참았던 눈물을 조금 흘렸다. “……근데, 애들 다 봤어요.” 지유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이었다. “저… 진짜 너무 창피해서… 그냥… 사라지고 싶어요…” 도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조용히 받아주었다. “그럴 수도 있지. 나라도 창피했을 거야.” 도현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지유의 손을 조금 더 꼭 잡았다. “근데 지유야. 이 일로 널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 나 포함해서 하나도 없어.” “……진짜?” “응. 그리고… 사실 나, 지유 너… 예전부터 좋아했어.” 지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웃을 때나, 혼자 조용히 뭔가 적을 때… 그런 거 하나하나가 진짜 좋았거든.” “근데…” 지유는 눈을 피했다. “나… 고양이로 변하기도 하고… 이상하잖아…” 도현은 웃었다. “그 얘긴… 나중에 다시 하자. 사실 나, 그거 처음 본 거 아니야.” “……?!” 지유가 놀라서 고개를 들었고, 도현은 살짝 웃으며 눈을 맞췄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냥 나 믿고. 괜찮다고. 진짜로.” 그때 라임쌤이 아이들 쪽으로 돌아서서 소리쳤다. “자! 지금부터 이 일 누가 한 마디라도 퍼뜨리면 그 땐 진짜, 나 혼내는 거다! 알았지? 누가 누구를 웃어?! 이지유가 지금 얼마나 힘든데!” 박동수는 작아진 채 체육관 한구석으로 사라졌고, 아이들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지유는 도현 옆에서 살짝 기대듯 앉아 있었다.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 누군가는 손을 내밀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조금 덜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