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한 조각을 } - 하루 (@HaruSky_) - [ 02화 / 온기가 식어가기 전 ] - 매일 연재 [ 작가의 말 ] 2화! 수연이의 첫사랑❤
[ 02 : 온기가 식어가기 전 ] 더 깊이 빠질 수록 숨은 더욱 막혔고, 더욱 간절히 허우적 거렸다. 남아있던 온기마저 식어가고 있었다. 귀는 분명 먹먹 했는데, 소리는 흐릿하게 들려왔다. "- 망상병 환자한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 "죄송합니다, 자꾸 본인이 8살이라고 하시길래 -" . . . 또렷하게 들린 한 마디. '수연아.' 물에서 천천히 건져지는 기분이 들었다. 살았다, 나 이제 살았다. . . . 눈을 떠보니 밥을 먹고 있었다. 숟가락을 들고 있었는데,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뭐라고 해야할까, 분명 나인데, '이건 지금의 너가 아니야' 라고 누군가 부르는 듯한 느낌. "... 한수연. 왜 대답이 없어?"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식었던 온기가 다시 도는 느낌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 수백 번 되뇌였던, 수백 번, 수천 번 떠올리며 눈물을 머금었던. . . . 엄마. "... 오늘 학교 끝나고 몇 시에 오냐고 물었잖아, 왜 대답을 안 해." "오늘도 5시 넘어서 올 것 같은데." "5시 넘어서? 저녁 먹을 때는 들어와." "아, 알겠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익숙하면서 오래 된 그 책가방을 매고 문을 열자,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 중학생이구나. 적어도 지금은. . . . 익숙한 학교에 도착하자 그 사실은 더욱 선명해졌다. 나는 열 다섯. 기억 속에서 흐릿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보이기 시작했다. . . . ... 여기도 학교. 하지만 다른 학교. 장소도 다르고, 교복도 다른... 고등학교였다. 그런데, 옆에서 내 손을 잡고 있던 것은... 잊으려고 했던, 하지만 또 미치도록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아이 아니겠는가. 이름이... "박정헌" "수연아, 니 왜 말이 없노, 무슨 생각해?" 한없이 다정했던 그 얼굴과 목소리. "그냥... 멍 때리느라고." 내 말에 다정하게 웃으며 도시락 뚜껑을 연 정헌은 주먹밥 하나를 내 입가에 가져다댔다. "울 아부지가 여자친구랑 먹으라고 싸줬다. 먹을거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그 어렸던 아이의 얼굴에 미소는 더욱 환해졌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 . . "...아. 수연아?"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얼굴을 한 정헌이 이번에는 내 손에 따뜻한 차를 쥐어주었다. '... 눈 내리네, 겨울이구나.' "수연아, 안 춥나? 많이 추우면 우리 집 갈래?" "아니, 안 추워. 하나도." 거짓말이 아니었다. 그 애가 곁에 있다면 온기가 식을 새가 없었다.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은 찬찬히 돌아왔다. 우리의 첫 만남 같은 것은 기억나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그것이 중요할까. 이렇게 함께 했다는 것이, 이렇게 함께 있는 것이 더욱 중요할 뿐. . . . ... 바다 냄새. 매미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수연아, 한수연. 니 거기서 뭐하는데?" . . . 이번에는 또 손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 . . 그 아이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는 느낌도. . . . 너무 따뜻해서 그대로 편안한 잠에 들어버릴 것 같았다. . . . ... 다시 물 속에 빠졌다. 뭐지, 이번엔 뭐지. 한참 따뜻했잖아, 한참 좋았는데... 차가운 물 속, 다시 온기가 모두 빠져나갔다. ... 박정헌과의 추억은 이대로 끝인걸까. 아니, 안 돼. 그렇게 둘 수는 없어. 온 힘을 다해 팔을 뻗고, 다리를 움직였다.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팔, 다리를 파닥거리며 입에서는 물거품이 잔뜩 올라오는 꼴이, 보지 않아도 얼마나 우스꽝스러울지 알 것 같아, 더욱 숨이 가빠지고 괴로웠다. 눈이 감겨가던 순간. "그만하자, 이제 잊자." ...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그럴 리가 없잖아, 이럴 리가 없잖아. "우리는 이제 끝인가 봐." 끊임 없이 들려오는 그 목소리. 날카로운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그대로 꽂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박정헌이 아니어서. 나여서. 숨통을 더욱 조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