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한 조각을 } - 하루 (@HaruSky_) - [ 03화 / 냉기가 서린 후에는 ] - 매일 연재 [ 작가의 말 ] 수연이 엄마... 너무 욕하지 마세요ㅠㅠ 제가 쓴 거지만... 사돈이랑 눈이 맞는 건 진짜...;; 내일 4화로 뵙겠습니다!
[ 03 : 냉기가 서린 후에는 ] 다시 숨을 쉬게 됐을 때는, 물 밖으로 빠져나와서도 몸이 얼어붙을 듯 추웠다. 숨을 쉬게 되었는데, 숨이 계속해서 막히는 느낌. . . . 한 식당 안에서 푸짐하게 식사를 차려 놓은 상 앞, 나는 정헌과 마주보며 앉아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는 엄마가, 또 그 앞에는 정헌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분이 앉아계셨다. "- 아무튼, 저희 정헌이가 어미 없이도 바르게 자란 아이 입니더. 수연이랑 결혼 후에도 잘 지낼 거라 믿어요." 껄껄 웃으며 말하는 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이유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분명 모두가 웃고 있었지만, 나는 젓가락 조차 들 수 없었다. "예, 저희 수연이도 마찬가지로, 아비 없이 컸거든요. 그래도 부족한 것 없이 잘 컸습니다. 정헌이가 잘해주는 만큼, 수연이도 정헌이한테 잘해줄 겁니다." . . . 몇 십년을, 아니, 나의 평생을 망친 순간들이 머리를 스쳤다. 어떡할까. 다 기억 나 버렸다. 제발, 이번에는 그 일이 또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차가운 현실은 밉도록 매정했다. . . . 내가 평생을 후회하면서도, 그 때의 날 안아주고 싶던 때. "엄마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동네 사람들이 엄마를 뭐라고 부르는지는 알고 그랬어?! 여우래, 남자 없이는 못 사는 X이라잖아." 누군가 뒤에서 목을 조르는 것처럼,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이 목을 꽉 막아버렸다. 답답했다. 엄마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는데, 차라리 머리를 쥐어뜯고 싸우는 것이 나을텐데. 죄 지은 얼굴로 딸을 바라보는 엄마에게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을까. "제발, 차라리 결혼을 반대하지 그랬어, 어떻게 그래. 어떻게! 사돈이랑 눈 맞는 부모는 세상에 엄마 밖에 없을 거야. 남자가 없으면 그렇게 살기가 어려워!? 남자가 미치도록 필요한 가봐, 그렇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뜨거웠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험한 말을 미친 듯이 내뱉었지만, 마음은 좀 처럼 가벼워지지 않았다. 가슴에 생겨버린 돌덩이를 엄마 가슴에 내려놓았고, 엄마는 순순히 받아냈다. 그런데, 그로 인하여 돌덩이 하나가 더 생겨버린 느낌. "아주, 그 아저씨랑 연애를 하더라. 결혼까지 할 판이었어." 그 말을 끝으로 집을 나와버렸다. 더는 숨 막히는 곳에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나의 숨통을 조이는 얼굴과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 . . 발걸음이 닿은 곳은 정헌이와 처음 만났던 고등학교. 어두워진 저녁에, 학교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그토록 따뜻했던 우리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온 몸에 힘이 들었다. 미친 사람처럼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으면, 차라리 속이 시원했을까. 덜 아플 수 있었을까. . . .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겨 박정헌의 집 앞에 멈춰 섰다. 몇 시간을 그대로 기다렸다. 그 애가 나오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그냥 기다리고 싶었을 뿐. 박정헌이 나온 것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던 때였지만, 그 애와 눈이 마주친 순간 눈물이 다시 흘렀다. "... 야, 우리 어카노." 그 아이도 마지막을 직감 했기에 더 서럽게 우는 것이겠지. "어떡하긴. 여기까지인 거지." 그 말에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끌어안은 정헌이는 미안하다는 말과 그러지 말라는 말만 반복할 뿐. "... 정헌아. 박정헌. 이거 놔. 놓고 말해." "... 싫어. 안 놓는다, 못 놓는다." 어린 아이처럼 울던 박정헌은, 나를 놓는 순간 내가 떠나갈 것이라는 듯, 나에게 매달렸다. '... 하.' 무표정한 얼굴에 한숨과 함께 다시 눈물이 새어나왔다. 이대로 끝이어야 하는데. 그토록 문제 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던 우리는, 이제 과거가 될 것이라는 게 어찌나 서럽던지.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랑한다고 인사하면 잊지 못할 것 같아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설움이 복받쳐 울던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사랑이라는 연극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