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한 조각을 } - 하루 (@HaruSky_) - [ 07화 / 조용했던 순간 ] - 매일 연재 [ 작가의 말 ] 수연이의 인생은 늘 소음으로 가득 했습니다ㅠㅠ 내일 8화로 뵙겟습니당ㅇ
[ 07 : 조용했던 순간 ] 늘 예쁠 줄만 알았던, 사랑만 줄 수 있을 것 같던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에 자라버린다. 어느덧 자식의 성공한 모습을 바라는 늙은 어미가 될 뿐이었다. 내가 아이들을 정말 사랑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저, 무시 당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시 당하고 싶지 않아, 아들들을 쫓아다니며 챙기고, 키워냈다. 아들들에게 무시 당하는 것을 선택한 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딸이었다. 오빠들처럼 사랑 받고 싶어하던 딸. 하지만 기억을 아무리 되짚어 보아도 내가 딸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른 기억이 없었다. 아들과 남편을 뒤쫓는 내 그림자에 깔린 것은 항상 딸이었다. 늘 뒤에서 "엄마" 라고 부르던 아이. 그런 아이에게 다정한 한 마디 조차 못한 나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눈빛을 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가 보는 내 눈빛이 어땠을지 상상해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내 자신이 혐오스러울 뿐이었다. 딸을 방치하려던 어미가 뒤늦게 후회를 한다면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 . 후회 할 때는 이미 늦은 것이고, 후회만으로 사람의 행실을 바꾸긴 어렵다. 수백 번, 수천 번 후회 했었다. 딸에게 더 친절해지겠다고, 더 다정해지겠다고 몇 백 번은 마음 먹고 다짐 했었다. 하지만 그러고도 다시 아들만 뒤쫓는 나만이 기억에 남을 뿐이었다. . . . 아픔. 후회. 그리고 공허함. 남편은 일을 나갔고, 아이들은 다 커버린 탓에 더 이상 그 집에 머물지 않았다. 텅 빈 집. 아무 소리 없이 고요했다. 늙은 나이에, 조용함은 이제 평온이 아닌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조용한 집에 혼자 가만히 앉아있던 나는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익숙할 것 같으면서도 낯선 순간. 조용한 건 처음 같았다. 그럴 리가, 내 인생은 시끄럽지는 않았다고. 늘 조용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는 답변만이 계속해서 돌아왔다. 조용하던 순간에도 늘 날 무시하고 비꼬는 시선과 수군거림이 소음을 만들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의 울음 소리, 그리고 남편의 침묵. 그런 것들이 계속해서 내 정신을 갉아 먹었었다고. 공허함은 사람을 아프게 만든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 . . 뭔가를 깜빡하는 일이 잦았을 뿐이다. 그런데 날 억지로 병원까지 끌고 간 것은 남편이었다. 의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이 몇 월 며칠이세요?" "... 잠시...만요." 대답할 수 없었다. "... 그러면, 100에서 7을 빼보실까요?" "100에서... 7..." 입이 떨어지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9... 95인가... 아, 93인가요..." 이후는 기억 나지 않는다. . . . 의사가 말했다. "알츠하이머형 치매의 초기 단계로 보입니다." "알츠... 뭐요? 치매...?" 남편은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잠시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이 사람이... 어머님 돌아가신 걸 기억 못해서..." "어머님이요? 보호자 분 어머님 말씀이세요?" "아, 아니요. 이 사람..." 순간 숨이 멎었다. 의사와 남편도 입을 다물었다. 엄마가. 엄마가. 엄마가. 죽었다고. . . . 거짓말은 이어졌다. ... 사실 거짓말이 아닌 것은 알았다. 하지만 내게는 거짓말 같을 뿐이었다. . . . 처음에는 약만 먹으라고 했다. 약만 잘 먹으라더니. . . . 다시 물에 빠져들었다. 이제 그만, 제발 그만. 더는 보고 싶지 않은 인생이었다. 더는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 . . 다시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달라 보였다. ... 내가 공주가 된 것 같았다. 모든 게, 모든 것이. 달랐다. 지나다니는 사람은 모두 내 아래로 보였다. 일부러 더 크게 말했다. 일부러 더 못되게 부려먹었다. 내가 공주라고. . . . 그리고 다시, 눈을 떠보니. "망상병 환자한테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 "죄송합니다..." 망상병. 망상. 이 모든 것이 망상이었다면, 차라리 나았을까. 내 존재 자체가, 망상이었다면. 착각이었다면. 그런데, 난 그저 공주가 아닐 뿐이었다. 모든 게 현실로 돌아왔다. 입술을 꽉 깨물었다. 피가 나도 상관 없었다. 그리고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하.. 하..." 내가 듣기에도 이상한 웃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내가 공주가 아닌 것을 어쩌면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공주가 되고 싶었다. 웃고 싶었다. 사랑하고 싶었다. 행복하고 싶었다. . . . 삶을 이어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