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시의 그 ] - 글: 하루 (@HaruSky_) - 단편 소설 [ 이곳의 '너'는 당신일 수도 있답니다. ]
[ 불시의 그 ] 그저 아무 곳이나 기웃 거리다가 너와 눈이 마주쳤다. '아, 날 봤나?' 그런 생각에 급히 숨어버렸지만 넌 여전히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뭐야. 나랑 눈이 마주친다고?' 이 의문이 내 안에서 몇 번을 떠다니다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라는 답변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정말, 나와 눈이 마주쳤을 확률은 0%. 난 없으니까. 넌 어딜 그리 쳐다보는 건지 궁금했다. 이번엔 당당하게 너의 앞에 서, 너를 바라보았다. 야. 어디 보냐? 어디 보냐고! 물어도, 물어도 대답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지. 그런데 너는 마치 내 말이 들리면서도 무시하는 것처럼 한숨을 푹 쉬었다. 내가 한심한 존재라는 거야, 뭐야. 동생이 귀찮게 옆에서 칭얼 대는 걸 무시하는 것처럼, 왜 그러는 건데! 괜히 짜증이 나, 너의 필통을 쳤다. '툭'. 정말 '툭' 하고 친 필통이 책상 아래로 쏟아졌다. 너는 아래를 바라보며 귀찮음이 가득 묻어나는 얼굴로 필통을 노려봤다. 그리고 필통을 주우려 고개를 숙이기 보다는, 발로 필통을 살짝 쳤다. 그러고 나서야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고도 한참 동안이나 필통을 바라보기만 했다. "하아..." 또 한숨을 쉬고, 그제서야 필통을 주웠다. 내가 지금껏 본 인간 중에서도 가장 게으른 인간이었다. 너는 귀찮음에 절여져 사는 평범한 사춘기 인간이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뭐, 그 나이 땐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러니까... . . . 그나저나, 얼마나 할 짓이 없길래 아무것도 없는 창 밖만 바라보고 있던 것인지. 한숨을 또 얼마나 많은지. 나는 열심히 혀를 찼다. 내 목소리가 안 들릴 것을 알면서도, 내 목소리를 듣고 짜증이 나, 나를 홱 돌아보며 노려보길 바랬다. 그래야 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내 말을 무시하는 듯한 그 태도가 너무나 얄미웠다. 됐어, 됐어. 인간이 다 그렇지. 나는 너의 뒤통수에 딱밤을 한 대 때리고는 소리쳤다. "종 쳤다, 수업이나 들어!" 그리고 나는 사물함 위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수업 시간에도 바로 졸게 뻔한 너였으니. 나는 나와 내기를 걸었다. '쟤, 수업 시작한지 10분만에 졸듯?' - 아니, 아니. 3분 만에. '1분일 지도 몰라.' - 그래, 쟨 워낙 게을러 보인다. '몇 살인 것 같아?' - 얼굴을 봐서는 열 다섯은 넘어 보이고... '열 여섯?' - 몰라, 열 일곱이나 열 여덟, 아니면 열 아홉일 가능성도 있어 보임. 너를 두고 내기를 벌이며 투닥 거리다 보니, 고개를 들어 널 봤을 땐 너는 이미 잠 들어 있었지. 하여간, 인간들이란... 나는 성큼성큼 다가가, 너의 가방을 뒤졌다. 교과서, 공책, 물병... 이건 또 뭐야? 웩. 유통기한 3년 지난 초콜릿? 이런 건 왜 있냐고. 가방만 봐도 알겠네. 얼마나 귀찮으면 가방까지 안 치우겠냐고... '어, 잠시만. 이거 뭐야? 일기장?' 나는 일기장을 펼치며 소리쳤다. "이야, 그렇게 게으른 인간이 일기도 써?" 하지만 내용이 많지 않았다. "에게게, 역시 너답네. 얼마 쓰지도 않을 일기, 일기장은 왜 샀냐? 돈 아깝게." '공부 왜 해야 됨?' '집 가고 싶다.' '한강 가서 죽을까?' '오늘도 X살.' '내게 행운이란 없음. 수고.' '성적이 무슨... 두더지냐고, 저 땅굴에 묻히도록 낮게...' "..." "푸하!" 나는 잠시 말이 없다가 크게 웃었다. 한참을 비웃으며 생각했다. 내가 인간이었다면, 그리고 핸드폰이 있었더라면 수십 장의 사진으로 찍어서 널리널리 퍼트릴 내용이라고. 나는 너무 웃은 탓에 숨을 헐떡이며 너에게로 다가갔다. 자고 있는 너의 등을 툭 쳤다. 그러자 너는 눈을 번쩍 뜨고 "아, 깜빡 졸았네." 라고 했고... 이 바보 같은 인간아. 죽긴 뭘 죽어? 사춘기 인간들은 한심하다. 시도 때도 없이 X살, 죽는다는 말을 반복... 너 비웃는 사람 되게 많아. 다들 배꼽 잡고 너 비웃어. 너 보는 사람 많다고, 바보야. 너는 참 재밌는 인간이다. 인간 중에서도. 그래서 나는 웃음 거리를 찾아, 네 곁을 맴돌았다. (나 하루종일 네 옆에 있는다고. 그러니까 허튼 짓 하면 내가 막 비웃는다고. 이제라도 똑바로 해라?) 자고 있는 네 옆에 서서 너를 살짝 건드리면, 너는 무언가를 중얼 거리며 뒤척였다. 그럴 때면 나는 낮게 웃으며 함께 중얼 거렸다. "귀찮다는 거 그렇게 많은 애가 잠은 잘 자네." 야, 근데 너. 솔직히 말해봐. 죽고 싶은 거 아니잖아. 게으르게 사는 거 자체가, 더 힘들기 싫어서지? 에휴, 나약한 인간아. 얼마나 너를 아끼면 게으른 삶을 선택하겠니. 너가 싫으면 너 진작에 고생하다가 쓰러졌... 아, 쏘리. 이 말은 좀 선 넘네. 아무튼, 넌 너 절대 못 버려. . . . 야. 너 어디 갔냐? 왜 안 보여? 바람결에 실려 발걸음이 닿는 곳에 너가 있었다. 오, 그렇게 게으른 너가 학교, 집 말고 다른 곳에? 그런 생각도 잠시, 넌 울고 있었다. "뭐하냐? 뭐해, 진짜. 그 나이 먹고 우냐? 어? 울면 산타 할아버지 선물 없는데?" 너는 코를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고..." 너의 혼잣말인 것을 알면서도,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어, 진짜 불쌍해. 많이. 그렇게 게으르게 태어난 것도 진짜 불쌍해 죽겠어. ... 사실, 그것 말고도 좀 불쌍하긴 해." '게으르다'.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성미나 버릇이 있다는 뜻... "그거 알아? 너 진짜, 진짜 바보야. 말로 설명 못해. 너무 바보거든. 공부 말고. 그냥 바보. 넌 어떻게 그렇게 널 모르냐. 너가 게으른 걸 넌 모르니까 그렇게 온실 속 화초처럼 살지. 밖에 나가서 고생 좀 해라." 너의 손에 꽉 쥐어진 그 종이. 나는 그 종이를 살짝 펼쳐 보았다. 성적표구나. 보지 않아도 아는 것이었다. "오케이, 성적은 안 볼게. 네 프라이버시잖아. 근데 성적이 어찌 되었든, 이렇게 울 시간에 다시 일어설 생각부터 해, 바보야. 우는 게 도움 되는 건 알겠어, 그런데 그 시간이 평생이면 안 된다고!"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 '답답'해. ... 그런데, 뭔가 코끝이 찡하기도 했고... 나는 너에게 조금 더 다가가고는, 너가 타고 있는 그네의 끈을 잡았다. "... 네가 어린 애냐, 그네나 타게. 그래, 마음껏 타. 오늘만이라도 어린 애가 되고, 산타 할아버지고 나발이고 우는 게 도움 될지도 모르니까. 너도 널 모르는 만큼 너한테 도움 될 만한 건 시도 해보는 게 좋으니까. 근데 사실 나도 너 모름." 손이 자연스럽게 너의 등으로 갔다. (내가 일부러 위로해주려고 그런 거 아니다. 너 때리려고 그런 거야.) 살짝 토닥였다. "작작 울어. 오늘만 우는 거야, 오늘만. 너 운다고 내가 맨날 이렇게 잔소리 하기도 입 아파." 앞서 말했듯, 나는 '없는' 존재이다. 너는 어째서 없는 것으로 구멍을 채우는 거냐? 사실, 나도 너로 배운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무기력이라는 거. 그게 슬픔보다 더 힘들다는 거. 일어서려고 해도 몸이 무겁다는 거. ... 손 한 번은 잡아줄게. 너가 아무리 무거워도, 다시 일어설 수만 있게. "너, 금방 일어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막 찾아와서 잔소리 하고 윽박지를 거거든. 불시검사 할 거야. 아무 때나 올 거니까, 매일 매일을 넘어져도 일어나고, 멈춰도 다시 출발하고! ... 만약에, 그래도 만약에 넘어지면... 에휴, 그 때도 내가 일으켜 줘야지. 아니다, 나 말고도 누군가 일으켜 줄 지도 모르겠네. 그보다, 이런 생각하기 전에 일어나서 출발할 준비나 해. 너 마라톤 뛰다가 넘어졌다고 그 자리에서 울 거야?!" 숨을 고르던 너는 한숨을 쉬었다. 눈물이 멈추었다. "에휴." 뭐든 하기 싫은 내게 아주 작은 선물 하나를 남길게. 너라는 존재 자체를, 너에게 선물할게. 너를 가진 너는 다시 일어날 수 있겠지? 아까 말했지? 불시검사 한다고... 불시의 나니까. 내일이면 출발선에 서. 그래야 내가 뒤에서 밀어줄 거야. 잘 달려보자고.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